육상트랙

2026년 2월 18일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트랙을 자주 찾았다. 연희동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연세대 트랙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이면 충분했다. 러너들 사이에서 연대 트랙은 일종의 성지 같은 곳이다. 우레탄 상태가 좋고, 조명이 밝고, 무엇보다 빠른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남들보다 좀 빠른 편이었고, 그래서 기록을 더 끌어올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인터벌을 돌리려면 결국 트랙으로 가야 했다.

러닝을 시작한 지 이제 삼 년이 됐다.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트랙에 가는 이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스피드 훈련을 하러 간다. 400미터를 정해진 페이스로 달리고, 200미터를 천천히 걸으며 숨을 고르고, 다시 달린다. 그것을 여덟 번이든 열 번이든 반복한다. 솔직히 말하면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인터벌이 끝나고 트랙 가장자리에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볼 때의 기분은, 다른 데서는 좀처럼 얻기 어렵다.

그런데 얼마 전에 트랙을 찾았을 때, 예전에는 분명히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꼈다.

그날은 평일 저녁이었고, 트랙에는 사람이 적당히 있었다. 바깥 레인에서 느긋하게 조깅하는 중년 남자가 있었고, 안쪽 레인에서는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진지한 얼굴로 반복 주행을 하고 있었다. 필드 안쪽 잔디에서는 누군가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물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인터벌을 돌리면서,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도는 것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반복해서 마주치다 보니, 그들의 존재가 점점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조깅하던 중년 남자는 네 바퀴째에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숨을 골랐다. 반복 주행을 하던 여자는 한 세트를 끝낼 때마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잔디에서 스트레칭하던 사람은 어느새 일어나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 각각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가 어렴풋이 보였다. 남의 삶을 엿보는 것이라고 하면 좀 대단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소소한 수준의 엿봄이다. 저 사람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 저 사람은 뭔가 목표가 있는 것 같다, 그 정도. 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히 묘한 기분이 든다.

홍제천이나 한강을 달릴 때는 그런 느낌을 받기 어렵다. 사람들이 멈춰 서 있더라도, 내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그들은 내 시야를 스쳐 지나간다. 벤치에 앉아 있는 커플도, 난간에 기대어 강을 바라보는 사람도, 자전거를 세워두고 전화를 받는 사람도, 스쳐 가면 그뿐이다. 그들은 풍경의 일부가 된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한강변을 달리는 것은 그것대로 멋진 일이다. 다만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기보다, 내가 지나쳐 온 장소에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트랙은 단조로운 곳이다. 똑같은 타원을 계속 반복해서 도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 단조로움 때문에, 트랙 위의 사람들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인다. 나는 그게 좋다.